SBS A&T 이머시브 미디어아트&테크 전문가 과정 강의
현장에서 배운 것은 설명이 아니라 판단력으로 가르쳐야 한다
강의실에 앉은 수강생들은 대부분 이미 현장에 다녀온 사람들이다. 조명을 세팅해봤고, 렌더링 파일을 넘겨봤고, 개막 전날 밤을 버텨봤다. 그런데 미디어아트 개론 첫 시간, ‘프로젝션 매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순간 말이 없어진다. 경험은 있는데 언어가 없다.
이 침묵이 단순한 말문 막힘이 아니다. 그것은 현장 경험이 아직 개념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손은 알고 있는데 머리가 설명을 못 하는 상태. SBS A&T 전문가 과정에서 강의를 맡으면서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 경험을 가르칠 수 없다. 판단 기준을 가르칠 수 있다.

처음에는 내가 해온 작업을 순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프로젝션 매핑의 기술 흐름, 룩스와 콘트라스트 비율, 서버 구성, 미디어 서버 소프트웨어 비교. 그런데 이런 정보는 수강생들이 검색으로도 얻을 수 있다. 강의실에 와서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정보가 아니라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했는가, 그 기준이었다. 빔 프로젝터 두 대를 블렌딩할 때 경계면이 왜 어긋나는지, 어떤 조건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 판단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결과만 말해주는 게 아니라 과정 속 선택지를 함께 펼쳐놓는 것.
미디어아트 개론을 구성할 때도 같은 원칙으로 접근했다. 정의와 역사보다 먼저, ‘이 전시는 왜 이렇게 설계됐을까’를 읽는 훈련을 넣었다. 관객 동선과 콘텐츠 흐름의 관계, 공간 크기 대비 프로젝션 면적의 비율이 체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지식보다 독해력을 먼저 키우는 순서다. 현장에서 새 상황이 오더라도 스스로 풀 수 있으려면 원리를 외우는 게 아니라 원리로 읽는 습관이 먼저 서야 한다.

- 수강생이 이미 경험자라면 강의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언어화 훈련이어야 한다. 말로 설명 못 하는 현장 감각은 다음 상황에서 재현하기 어렵다.
- 사례는 성공보다 판단이 어긋난 순간을 쓰는 게 낫다. 잘 된 작업은 왜 잘 됐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삐끗한 순간은 원인이 선명하다.
- 개론 수업일수록 정의를 줄이고 질문을 늘려라. ‘몰입형 전시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 전시에서 관객은 언제 멈추는가’로 시작하면 토론이 달라진다.
🔭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정리되는 건 자기 자신이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뜻밖의 일이 생겼다. 내가 오랫동안 감각으로만 해왔던 선택들을 말로 옮기려니 근거가 흐릿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이 공간에서는 이 밝기를 택했는지, 왜 이 속도로 전환을 줬는지. 현장에선 그냥 맞는 것 같아서 했던 결정들이 강의 슬라이드를 만들다 보면 설명이 안 됐다. 그 지점이 불편하면서도 유용했다. 가르치는 행위가 나를 돌아보게 한 게 아니라, 설명의 압박이 내 판단을 검증하게 만든 셈이다.
현장에서 배운 것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일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다. 내가 경험을 언어로 가공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내 현장도 다시 정리된다. 수강생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때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직 내가 그 부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SBS A&T 강의는 그래서 내게도 일종의 현장이었다. 빛을 쏘는 현장이 아니라 언어를 시험하는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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