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리스트로 산다는 것
전문가 사이에서 잇는 사람이 아니라, 잇는 것 자체가 전문성이다
회의 자리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이 있다. 개발자가 기술 스펙을 펼치면 기획자는 조용해지고, 기획자가 방향성을 말하면 개발자는 시선을 떨군다. 두 집단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을 때, 나는 통역사로 불려가 앉는다. 문제는 통역사 자리에 예산이 책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라이트 페스티벌 현장에서도,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프로젝트에서도 이 구조는 반복됐다. 나는 ‘잡식성 기획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포지션이 뭐냐’는 질문도 여러 번 받았다. 제너럴리스트라는 말이 얼마나 오해받는 단어인지, 그리고 그 오해 안에서 어떤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지가 이 글의 주제다.
🔍 연결 자체가 기술이지, 연결을 돕는 보조 역할이 아니다

프로젝션 매핑 현장을 예로 들면 이해가 빠르다. 콘텐츠 팀은 영상을 만들고, 기술 팀은 장비를 세팅하고, 공간 팀은 구조물을 놓는다. 각자 맡은 파트는 완성도가 높다. 그런데 세 팀의 결과물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긴다. 영상의 종횡비가 구조물 면적과 맞지 않거나, 장비 출력이 공간의 주변광을 이기지 못하거나, 동선 설계가 관람 맥락을 깨뜨린다. 이 균열은 각 팀이 나쁜 게 아니라, 팀과 팀 사이에 판단을 내릴 사람이 없어서 생긴다. 제너럴리스트가 앉는 자리가 바로 거기다.
나는 코드를 짜지 않는다. 영상을 직접 렌더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개발자와 콘텐츠 디렉터가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문서 구조를 짜고, 기술 제약이 창작 방향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발주처와 제작사 사이에서 협상의 틀을 만든다. 이걸 ‘잡일’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기획’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냥 ‘연결’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연결은 숙련이 필요한 작업이다.

- 여러 분야를 얕게 아는 것과 분야 간 경계를 읽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후자가 제너럴리스트의 실제 기술이다.
- 잇는 역할은 회의 때 보이지 않는다. 회의 전 준비와 회의 후 정리에서 실질 기여가 일어난다.
- 포지션이 모호할수록 책임 소재도 모호해진다. 제너럴리스트가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명문화해야 한다.
🔭 스페셜리스트가 깊이를 팔 때, 제너럴리스트는 지형을 판다
철원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든 진주성 프로젝션 매핑이든, 현장마다 구조는 달랐어도 패턴은 같았다. 전문가들이 각자의 깊이 안에 있을 때, 프로젝트 전체의 지형을 보는 사람이 필요했다. 지형을 안다는 건 각 팀의 언어를 이해하되 어느 팀의 언어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위치를 유지하는 일이다. 한쪽 언어에 너무 깊이 들어가면 다른 쪽을 번역할 수 없게 된다.
제너럴리스트로 산다는 건 결국, ‘내가 뭘 모르는지 아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일이다. 어디서 전문가를 불러야 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어떤 정보가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 이 능력은 깊이가 없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여러 깊이를 경험한 뒤에 얻어지는 메타 인식이다. 나는 지금도 이 자리가 어렵다. 하지만 이 자리가 없으면 현장이 더 어렵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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